붉은 사막 낙타 한 마리

타이타닉의 2006년 버전 본문

갈무리/블로그1

타이타닉의 2006년 버전

이쁜아코 2008.12.19 14:17
<게이샤의 추억/롭 마셜>

2주 전인가 어느 잡지에서 <게이샤의 추억>을 다루었는데 꽤나 호의적인 평이었다.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동아시아에서 중국인이 게이샤 역을 맡는다는 것과 미국 감독이 아시아의 소재를 다룬다는 사실 때문에 이 영화는 다분히 논쟁 도발적이다. 그 프리뷰의 평은 감독 및 스태프들이 애초에 이런 위험성을 잘 알고 시작했으며, 그래서 그 보다는 의상과 무대 등의 영상 미학과 ‘영화적’ 실험성에 더 비중을 두고 작업했다고 밝혔다.

애초 이 글을 읽은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런 갖가지 혐의들을 잘 알고 시작했다니, ‘흐흠, 그렇다면 얼마나 잘 꾸렸는지 두고 보자’라는 심보로 영화를 보게 됐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지나친 기대와 숙지된 정보는 대상을 감정가는 대로 받아들이는 데에 방해요소가 된다 (때로는 진실의 눈이 될 수도 있지만). 극장을 나오면서 간만에 영화비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이 일본의 게이샤가 되고 정체불명의 지리적 조건을 갖춘 하나마치에서 영어를 쓰는 일본인들이 활보한다. 게이샤는 고증에 충실하기보다 현대적 감각에 맞춘, 몸매를 더욱 강조하는 섹시한 기모노를 입고 치장을 한다. 영화는 하나의 판타지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그 무엇인가가 영화를 판타지 그 자체로 인식하는 데에 장애물이 되고 있었다. 역시나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를 벗겨낼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가공된, 한층 고차원적인 오리엔탈리즘이 바탕에 깔려 있다.

내 눈에는 서구의 감독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배우들에게 신비하다고 느껴지는 기모노를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바꾸어 입히고, 영어를 말하라고 시키는 것으로 비춰졌다. 영화에서 배우들은 스탭들이 차려 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스탭들의 밥상 도면에 따라 음식을 만들고 차리는 역할에 그칠 뿐이었다.

더구나 로망스의 기본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스토리에서 ‘당당한 여성인 게이샤’는 사라지고, 남자의 녹을 먹고 그 행복으로 살아가는 나약한 여자들이 그 자치를 대체하고 있다. 왕비도 아니고 왕후도 아닌 어느 게이샤의 아름답고 꿈결같은 기억은 고작 원하던 후견인의 애인(첩!)이 되는 거였더란 말인가. 너무나도 해묵은 문제고 지겹도록 반복된 레퍼토리가 어떻게 요즘 시대에 다시 등장할 수 있는지 오히려 신기할 따름.

다만 공리의 연기에는 박수를 주고 싶다. 정말 때려주고 싶을만큼 나쁜 X였다. 관록의 힘이란 이래서 무서운 건가 싶다. 

2006/02/06 11:11

0 Comments
댓글쓰기 폼